한일 과거사 갈등, 60년 전 봉합이 남긴 미완의 조항들
다카이치 총리의 '원격 참배'와 추도사에서 빠진 '반성' 문구가 다시 한일관계의 뇌관으로 떠올랐다. 이번 사안이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라 1965년 국교정상화 당시 봉합된 몇 가지 조항의 해석 차이가 60년째 반복 재생되고 있다는 점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1965년 한일기본조약과 청구권협정은 양국 관계의 법적 토대를 마련했지만, 동시에 이후 갈등의 씨앗도 함께 심어놓았다. 협정 2조는 청구권 문제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라 명시했으나, 이 조항이 개인의 손해배상청구권까지 포괄하는지에 대해서는 양국 정부의 해석이 처음부터 갈렸다. 한국 정부는 오랫동안 국가 간 외교적 보호권만 소멸했다는 입장을 취했고, 일본 정부는 개인청구권까지 포함해 모든 문제가 종결됐다고 봐왔다.
이 해석의 간극이 실제 정책 갈등으로 표면화된 계기는 2018년 대법원의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판결이었다. 당시 대법원은 일본 기업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고, 일본 정부는 이를 국제법 위반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이후 수출 규제, 지소미아 갈등으로 이어진 일련의 사태는 법적 해석 차이가 어떻게 경제·안보 영역까지 파급되는지를 보여준 사례로 남아 있다.
위안부 문제 역시 비슷한 궤적을 그렸다.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는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해결'을 명시했지만, 피해자 단체와 여론의 반발 속에서 이후 정권 교체와 함께 사실상 동력을 잃었다. 합의가 정부 간 문서로는 존재하되 사회적 합의로 이어지지 못한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는 이와는 결이 다른 갈등 축이다. A급 전범이 합사된 신사에 일본 정치인이 참배하는 행위는 정교분리 원칙과 정치적 상징성이 동시에 얽혀 있어, 매년 8월과 춘추 예대제 시기마다 반복적으로 외교 현안화됐다. 이번에 보도된 '원격 참배'와 추도사에서의 '반성' 문구 삭제는 형식과 내용 양면에서 이전 정권들의 관례와 비교되는 지점이다. 다만 이것이 정책 기조의 변화를 의미하는지, 국내 정치 일정에 따른 일시적 조정인지는 추가 확인이 필요한 사안이다.
구조적으로 보면 한일 과거사 갈등은 특정 사건이 새로 터졌다기보다, 1965년 체제가 처리하지 못한 해석의 여백이 정권 교체나 사법부 판단, 국내 정치 상황에 따라 주기적으로 재점화되는 패턴에 가깝다. 이런 배경을 감안하면 이번 사안 역시 향후 한일 정상회담이나 실무 협의 과정에서 기존 쟁점들과 함께 재론될 가능성이 높다. 관련 동향을 살필 때는 개별 발언이나 상징적 행위 하나에 매몰되기보다, 그것이 기존 협정·판결·합의의 어떤 지점과 연결되는지를 함께 짚어보는 접근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