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과거사 갈등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는 지난 추도식에서 야스쿠니 신사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대신 500미터 떨어진 국회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공물만 봉납했다. 참배도 불참도 아닌 그 애매한 거리, 그리고 추도사에서 조용히 사라진 '반성'이라는 단어가 지금 한일관계의 좌표를 정확히 보여준다.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은 양국이 식민지배 배상 문제를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했다고 명시했다. 그러나 2018년 한국 대법원은 강제동원 피해자 개인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이 협정으로 소멸되지 않는다고 판결하면서, 봉합된 줄 알았던 상처가 다시 벌어졌다.
위안부 문제도 비슷한 궤적을 그렸다.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는 '최종적, 불가역적 해결'을 선언했지만, 피해 당사자들의 동의 없이 정부 간 협상으로만 이뤄졌다는 비판 속에 사실상 동력을 잃었다.
두 사례 모두 법적 '해결'과 피해자가 체감하는 '해소' 사이의 간극을 드러낸다. 양국이 매번 합의문에 서명하고도 갈등이 되풀이되는 이유는, 애초에 '해결'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합의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보수 진영
1965년 협정과 2015년 합의로 법적 배상 문제는 이미 정부 차원에서 종결됐으며, 이를 반복해서 재론하는 것은 국제법적 안정성을 해친다.
근거 — 정부 간 공식 합의가 존재하는 한, 개별 소송이나 정치적 요구로 이를 무력화하면 향후 어떤 외교 합의도 신뢰받기 어려워진다는 논리 때문이다.
한국 정부·피해자 단체
형식적 합의가 있었더라도 가해자의 진정성 있는 반성과 사죄가 뒤따르지 않으면 역사는 실질적으로 봉합되지 않는다.
근거 — 강제동원과 위안부 피해자 개인의 고통은 국가 간 합의문 서명만으로 해소되는 것이 아니라 인정과 애도의 과정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더 넓게 볼지, 더 깊게 볼지 골라보세요
한일 과거사 갈등의 반복이 한미일 삼각 안보협력이라는 더 큰 구도에는 어떤 파장을 미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