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년제 개편, 왜 지금인가: 제도 변화의 배경을 읽다
일본 기업들의 정년 연장·폐지 움직임은 갑작스러운 결정이 아니라 수십 년에 걸친 인구구조 변화와 법제도 개편이 누적된 결과다. 이 흐름이 어디서 시작됐고 어떤 이해관계 속에서 현재의 형태로 도달했는지를 짚어본다.
일본의 정년제 개편 논의는 1990년대 고령화 사회 진입과 함께 본격화됐다. 1994년 고령자고용안정법 개정을 통해 60세 정년이 법적 의무로 자리 잡았고, 이후 2006년 개정에서는 기업이 정년 연장, 정년 폐지, 계속고용제도 도입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하는 이른바 '3가지 선택지' 방식이 도입됐다. 이는 기업의 자율성을 존중하면서도 고령 인력 활용을 유도하려는 절충안이었다.
2013년 개정에서는 원칙적으로 65세까지 희망자 전원을 계속 고용하도록 의무화하는 방향으로 강화됐고, 2021년에는 70세까지 취업 기회를 확보하도록 노력할 의무가 기업에 부과됐다. 다만 이는 '노력 의무'에 머물러 있어 강제성은 약했다. 이런 단계적 법제 변화는 기업이 인건비 부담과 인사 체계 개편이라는 현실적 제약 속에서 서서히 대응할 수 있도록 하는 절차였다고 볼 수 있다.
최근 보도된 제약회사 사례처럼 65세 이상도 정규직으로 유지하는 방식은 이런 법제 흐름의 연장선에 있다. 다만 법이 요구하는 최소 기준을 넘어 기업이 자발적으로 정년 자체를 흐리게 만드는 결정을 내리는 배경에는 노동력 부족이라는 보다 직접적인 압박이 자리한다. 일본의 생산가능인구는 1995년을 정점으로 감소해왔고, 특히 제조업과 전문직 인력난이 심화되면서 숙련된 고령 인력을 놓치지 않으려는 기업의 유인이 커졌다.
이 과정에서 임금체계 개편이라는 또 다른 축이 함께 논의되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일본 기업의 전통적인 연공서열형 임금체계는 근속연수에 따라 임금이 상승하는 구조였는데, 정년이 사실상 사라지거나 늦춰지면 이 구조를 그대로 유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제도 논의 초기부터 있었다. 이에 따라 일정 연령 이후 임금을 재조정하는 '역할급'이나 성과 중심 임금체계로의 전환이 병행되는 경우가 많다. 즉 정년 연장·폐지는 고용 안정성 확대라는 측면과 임금체계 변화라는 측면이 동시에 얽혀 있는 사안이다.
노동조합과 경영계의 이해관계도 이 흐름에 영향을 미쳤다. 노동조합은 고용 안정과 소득 보장을 요구해왔고, 경영계는 인건비 관리와 인사 유연성을 확보하려 해왔다. 정부의 법 개정은 이 두 요구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아가는 과정이었으며, 그 결과가 '의무'와 '노력 의무'를 섞은 현재의 제도로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한국 역시 고령화 속도와 노동력 구조 변화라는 유사한 압력에 직면해 있다는 점에서, 일본의 단계적 제도 변화 경로는 참고할 만한 사례로 거론된다. 다만 두 나라의 임금체계, 노동시장 구조, 사회보장 제도가 다르다는 점에서 동일한 결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함께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