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법제화 비교표: EU와 한국, '규제 리스크 프리미엄'은 얼마나 다른가
부동산 가격이 입지와 인허가 리스크에 따라 할인율을 달리 적용받듯, AI 산업의 가치도 규제 환경이라는 '입지'에 따라 리스크 프리미엄이 갈린다. EU AI Act와 한국 AI기본법을 같은 기준선 위에 놓고 비교하면, 투자자가 감당해야 할 불확실성의 크기가 서로 다르게 나타난다.
첫 번째 비교 기준은 규제 방식이다. EU AI Act는 위험도별 등급을 나눠 고위험 AI에 사전 인증을 요구하는 구조로 2024년 시행에 들어갔다. 한국 AI기본법은 진흥과 규제를 병행하는 프레임으로, 세부 시행령과 고시가 아직 확정되지 않은 구간이 많다. 부동산으로 치면 EU는 지구단위계획이 확정된 필지, 한국은 계획은 승인됐지만 세부 용적률·건축선이 아직 조정 중인 필지에 가깝다. 후자는 개발이 가능하다는 확신은 있지만, 실제 사업성 계산에는 시행령 확정 시점까지 유동성 할인을 적용해야 한다.
두 번째 기준은 속도조절 여부다. [디지털데일리] 보도에 따르면 세계 최초로 AI법을 시행한 EU조차 최근 속도조절에 들어갔고, '기준 없는 선규제'에 대한 경고가 나온다. 이는 인허가 절차를 서두른 재건축 단지가 지반조사 없이 착공했다가 추후 안전진단 재검토로 공사가 멈추는 상황과 유사하다. 반대로 인허가가 지나치게 느리면 개발이익률(ROI)이 잠식된다. 규제 속도는 빠르다고 좋은 것도, 느리다고 안전한 것도 아니며, 기준의 명확성이 리스크 프리미엄을 결정하는 실질 변수다.
세 번째 기준은 산업의 실제 대응 방식이다. [디지털데일리] 보도는 메타까지 코딩 에이전트 시장에 진입한 가운데, 국내 기업들은 폐쇄망·멀티모델 전략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전한다. 이는 규제 불확실성이 큰 시장에서 기업이 스스로 리스크 프리미엄을 낮추기 위해 설계를 바꾸는 사례다. 부동산에서 규제지역 개발사가 별도의 방재·방화 설계를 추가해 인허가 리스크를 상쇄하는 것과 같은 논리다. 폐쇄망 전략은 데이터 유출 규제 리스크에 대한 보험 성격이 강하고, 멀티모델 전략은 특정 사업자 리스크에 대한 분산 전략에 해당한다.
종합하면, 같은 'AI 법제화'라는 라벨 아래에서도 EU와 한국의 리스크 프리미엄 구조는 다르다. EU는 시행 초기 불확실성이 완화되는 국면이지만 속도조절로 인한 정책 변동 리스크가 남아있고, 한국은 기본법은 확정됐으나 하위법령 미확정에 따른 유동성 할인이 남아있다. 투자 또는 사업 판단 전에 확인할 세 가지는 시행 일정의 확정 여부, 하위법령·고시의 구체화 수준, 그리고 기업이 실제로 어떤 기술적 대응(폐쇄망, 멀티모델 등)을 택하고 있는지다. 이 세 항목이 명확할수록 할인율은 낮아지고, 불명확할수록 프리미엄은 올라간다. 법제화 자체를 호재나 악재로 단정하기보다, 확정 구간과 미확정 구간을 나눠 각각의 가격을 매기는 접근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