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해협, 왜 하필 지금 '영토'인가: 40년 갈등의 지형도
트럼프 전 대통령의 호르무즈 해협 영토 선언 발언은 돌발적으로 보이지만, 이 해역을 둘러싼 미국과 이란의 대치는 이미 반세기 가까이 이어져 온 사안이다. 발언의 파장을 가늠하려면 먼저 이 좁은 물길이 왜 국제정치의 뇌관으로 남아있었는지부터 짚어야 한다.
호르무즈 해협은 폭이 가장 좁은 곳이 33km에 불과하지만, 전 세계 해상 원유 수송량의 약 20%가 이 통로를 지난다. 이란과 오만이 마주보고 있어 어느 한쪽도 배타적 통제권을 주장하기 어려운 구조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통제권을 둘러싼 긴장이 반복되어 왔다.
국제법적으로 호르무즈 해협은 유엔해양법협약(UNCLOS)이 규정한 '국제항행용 해협'으로 분류된다. 연안국의 영해 폭이 좁아 공해 통로가 확보되지 않는 해협에는 통과통항권이 적용되며, 이는 군함을 포함한 모든 선박에 자유로운 통항을 보장한다. 다만 미국은 UNCLOS 자체를 비준하지 않은 국가다. 이 지점이 이번 발언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배경이 된다. 미국은 관습국제법상 통과통항권 원칙을 존중한다고 밝혀왔지만, 협약 당사국이 아니라는 사실은 향후 논쟁에서 반복적으로 소환될 여지가 있다.
미국과 이란의 해협 갈등사는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이른바 '유조선 전쟁'에서 양측이 서로의 유조선을 공격하자, 미국은 1987년부터 쿠웨이트 유조선에 성조기를 달게 하고 해군을 파견해 호위했다. 이 시기 미 해군과 이란 혁명수비대 간 직접 충돌도 있었다. 이후에도 이란은 서방의 제재가 강화될 때마다 해협 봉쇄 가능성을 언급하며 협상 지렛대로 활용해왔고, 2019년에는 유조선 피격 사건을 둘러싸고 양국이 서로를 배후로 지목하며 군사적 긴장이 고조된 바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이번 발언은 완전히 새로운 것이라기보다, 미국 대통령이 개인적 수사로 해협에 대한 영향력을 강조한 사례로 봐야 한다. 다만 '영토 선언'이라는 표현이 실제 법적 조치로 이어질지, 아니면 정치적 발언에 그칠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국제항행 해협을 특정국이 영토로 편입하겠다고 선언하는 것은 UNCLOS 체제 자체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사안이어서, 실현 가능성과는 별개로 국제사회의 반응이 먼저 주목되는 이유다.
정책 분석의 관점에서 눈여겨볼 지점은 규제 강도와 산업 대응 속도의 간극이다. 해운·에너지 업계는 지정학적 발언 하나하나에 즉각 반응하지 않는다. 보험료율 조정, 항로 재검토, 물류 계약 재협상에는 통상 수 주에서 수개월이 소요되며, 이는 정부 간 공식 성명이나 실제 군사·행정 조치가 뒤따를 때 본격화된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발언의 파급력을 예단하기보다, 미 국무부나 국방부의 후속 입장, 이란 및 걸프 연안국의 대응, 그리고 국제해사기구(IMO) 등 다자기구의 반응을 순차적으로 확인하는 것이 실용적인 접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