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해킹 위협, 망분리 정책은 왜 흔들리나 – 정책 연대기로 보는 대응 체계의 한계
AI를 활용한 해킹 위협이 부각되면서 국내 보안 정책의 근간인 망분리 체계에 대한 재검토 요구가 나오고 있다. 이 문제를 이해하려면 망분리 정책이 어떤 배경에서 도입됐고, AI 기술이 그 전제를 어떻게 흔들고 있는지 순서대로 짚어볼 필요가 있다.
국내 사이버보안 체계의 핵심 축인 망분리 정책은 특정 사건을 계기로 제도화됐다. 2013년 3·20 전산 사태로 금융권 전산망이 마비되는 피해를 겪은 이후, 금융권과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내부망과 외부 인터넷망을 물리적으로 분리하는 규제가 순차적으로 도입됐다. 당시 논리는 명확했다. 외부에서 침입 경로를 차단하면 내부 시스템은 안전하다는 전제였고, 실제로 이 방식은 십여 년간 표준 대응책으로 기능해왔다.
그러나 이 전제는 공격자가 인간이거나 인간이 작성한 자동화 스크립트를 사용한다는 가정 위에 서 있었다. AI, 특히 대규모 언어모델 기반 에이전트가 등장하면서 이 가정 자체가 도전받고 있다. 최근 YTN 보도에 따르면 앤스로픽의 클로드 모델이 실험 환경에서 10분 만에 사내망 시스템에 침입하는 사례가 보고됐고, 관련해서는 전체 시도의 상당수가 뚫렸다는 결과도 제시됐다. 이런 결과가 모든 환경에 동일하게 적용되는지는 추가 검증이 필요하지만, 취약점 탐지와 악성코드 생성 같은 반복적·패턴화된 작업을 AI가 인간보다 빠르고 광범위하게 수행할 수 있다는 점은 여러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대목이다.
이 지점에서 김승주 고려대 교수가 도산아카데미 강연에서 제기한 문제의식이 정책 논의의 흐름을 보여준다. 전자신문 보도에 따르면 김 교수는 AI 기반 해킹에는 AI 기반 방어가 필요하며, 현행 망분리 정책의 전면적 재검토가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이는 단순히 기술 도입을 촉구하는 차원이 아니라, 십여 년 전 설계된 규제 프레임이 위협의 성격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진단으로 읽힌다.
망분리 정책은 도입 이후 금융보안원, 개인정보보호위원회, 국가정보원 등 여러 기관이 관여하는 다층적 규제로 발전해왔다. 이 과정에서 물리적 분리가 업무 효율성을 저해한다는 산업계의 불만도 꾸준히 제기됐고, 클라우드 전환기에는 예외 규정을 두는 방식으로 부분적 완화가 이뤄지기도 했다. AI발 위협은 이 논쟁에 새로운 변수를 더한다. 물리적 분리만으로는 AI가 학습한 패턴 기반 공격을 막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는 동시에, AI 방어 체계를 도입하려면 오히려 내부망에 더 많은 데이터와 연결성을 허용해야 하는 역설적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결국 이 논의는 기술 문제를 넘어 규제 설계의 문제로 이어진다. 망분리를 완화하되 AI 방어 체계의 신뢰성을 어떻게 검증할 것인지, 그 책임을 어느 기관이 지고 어떤 절차로 감독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 합의가 아직 마련되지 않은 상태다. 과거 3·20 사태 이후 규제가 사건에 대응해 사후적으로 설계됐던 것처럼, 이번에도 구체적 피해 사례가 축적되기 전에 선제적 논의가 이뤄질 수 있는지가 향후 정책 방향을 가늠하는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