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릴열도 분쟁의 뿌리: 얄타에서 푸틴 방문까지, 이어진 협상의 지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쿠릴열도(일본명 북방영토) 첫 방문은 단발성 외교 이벤트가 아니라, 2차대전 종전 처리 과정에서 시작돼 80년 가까이 미해결 상태로 남아 있는 영유권 분쟁의 연장선에 있다. 일본의 즉각적인 항의 역시 이 지역을 둘러싼 오랜 절차적·법적 공방의 한 대목으로 읽는 것이 사실관계 파악에 도움이 된다. 이 글은 사건 자체보다 그것이 놓인 역사적 좌표를 정리한다.
쿠릴열도 분쟁의 출발점은 194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얄타협정에서 미·영·소 3국은 소련의 대일전 참전을 조건으로 쿠릴열도와 사할린 남부를 소련에 이양하기로 합의했고, 소련군은 종전 직후 이투루프, 쿠나시르, 시코탄, 하보마이 등 4개 섬을 포함한 열도 전역을 점령했다. 문제는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서 일본이 쿠릴열도에 대한 권리를 포기하면서도, 조약 문언이 '쿠릴열도'의 지리적 범위를 명확히 규정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일본 정부는 이 4개 섬이 조약상 포기 대상인 '쿠릴열도'에 포함되지 않는 고유 영토라고 주장해왔고, 소련·러시아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 해석 차이가 지금까지 이어지는 법적 공방의 핵심이다.
냉전기에도 양국은 완전한 단절 상태는 아니었다. 1956년 소일 공동선언에서 소련은 평화조약 체결을 조건으로 시코탄과 하보마이 2개 섬을 일본에 반환할 수 있다는 입장을 문서화했다. 그러나 이후 냉전 대립 심화와 미일안보조약 개정 등을 이유로 소련이 이 약속의 이행 조건을 사실상 후퇴시키면서 협상은 장기간 정체됐다. 탈냉전 이후에도 옐친, 푸틴 초기 집권기를 거치며 정상회담 차원의 논의가 여러 차례 재개됐지만, 4개 섬 일괄 반환을 요구하는 일본과 2개 섬 반환을 상한선으로 제시하는 러시아 사이의 간극은 좁혀지지 않았다.
2010년대 이후 상황은 오히려 더 경직되는 흐름을 보였다. 러시아는 극동 지역 개발 정책의 일환으로 쿠릴열도에 대한 인프라 투자와 경제특구 지정을 확대했고, 2020년 헌법 개정을 통해 영토 양도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조항을 신설하면서 협상의 법적 여지를 스스로 좁혔다는 평가가 나온다. 여기에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일본이 서방의 대러 제재에 동참하면서 양국 관계는 실질적으로 단절 국면에 들어섰다. 러시아는 이를 이유로 평화조약 협상 자체를 중단한다고 공식 발표한 바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이번 푸틴 대통령의 현지 방문은 실효 지배를 상징적으로 재확인하는 조치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다만 방문의 정치적 의도나 향후 정책 변화 여부에 대해서는 러시아 측의 공식 설명이 제한적인 만큼 단정하기 이르다. 일본 정부의 항의 역시 새로운 절차라기보다, 자국의 영유권 주장을 대외적으로 재확인하는 관행적 대응에 가깝다는 점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쟁점을 이해하려는 이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지점은 세 가지다. 첫째, 분쟁의 법적 근거는 얄타협정과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의 문언 해석 차이에서 비롯된다는 점. 둘째, 1956년 공동선언이 지금도 일본 측 협상 전략의 기준점으로 남아 있다는 점. 셋째, 2022년 이후 제재 국면과 헌법상 영토 양도 제한이 겹치면서 협상 재개의 제도적 문턱이 이전보다 높아졌다는 점이다. 이 세 요소를 함께 두고 봐야, 이번 방문이 기존 구도에서 벗어난 새로운 국면인지 아니면 익숙한 긴장의 반복인지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