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 AI 데이터 중복·부실 문제, 9년간 무엇이 쌓였나
1조6000억원이 투입된 공공 AI 학습데이터 사업에서 품질 부실과 중복 구축 문제가 지적됐다. 이는 단일 사업의 관리 실패라기보다, 여러 부처와 기관이 개별적으로 데이터 구축을 추진해온 지난 9년의 정책 구조가 누적된 결과에 가깝다.
공공 AI 학습데이터 구축 사업은 2010년대 후반 인공지능을 국가 전략 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방침 아래 본격화됐다. 당시 정부는 데이터를 산업 인프라로 규정하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를 중심으로 여러 부처와 산하기관이 각자의 영역에서 AI 학습용 데이터셋을 구축하도록 예산을 배분했다. 이 과정에서 데이터 구축은 기관별 성과 지표로 활용됐고, 확보된 데이터의 '양'이 사업 평가의 핵심 기준으로 자리잡았다.
문제는 이 구조가 부처 간 조정 장치 없이 확장됐다는 점이다. 각 기관은 유사한 산업 분야, 이를테면 의료·제조·농업 등에서 독자적으로 데이터 수집·가공 사업을 발주했고, 이 과정에서 사업 간 정보 공유나 중복 점검 절차는 충분히 마련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유사하거나 겹치는 데이터셋이 여러 사업에서 반복 생산되는 구조가 형성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품질 관리 역시 구조적 공백 속에 놓여 있었다. 데이터 구축 사업은 통상 외부 수행기관에 위탁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발주-검수-공개로 이어지는 절차에서 표준화된 품질 기준이 명확히 정립되지 않았다는 점이 반복적으로 거론된다. 검수 단계에서 데이터의 정합성이나 활용 가능성을 엄격히 따지기보다, 계약된 수량을 채우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는 것이다. 이는 개별 사업 담당자의 문제라기보다, 성과 지표 설계와 예산 집행 방식이 만들어낸 구조적 결과로 봐야 한다.
이 사이 데이터 관련 제도 환경도 변화를 거쳤다. 2020년 데이터 3법 개정 이후 데이터 활용의 법적 기반이 정비됐고, AI 허브와 같은 통합 플랫폼이 마련되며 데이터 공개·공유의 틀이 갖춰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러한 통합 인프라가 기존에 이미 진행 중이던 개별 사업들을 사후적으로 정리하거나 통폐합하는 기능까지 충분히 수행했는지는 별개의 문제로 남는다. 통합 플랫폼의 등장과 개별 부처 사업의 지속은 병행됐고, 그 접점에서 조정 공백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해관계 구조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데이터 구축 사업은 다수의 민간기업과 연구기관에 참여 기회를 제공하는 예산 집행 창구이기도 했다. 사업 수행기관 입장에서는 계약 규모와 납품 완료가 우선 과제였고, 발주 기관 입장에서는 예산 소진과 실적 보고가 중요한 목표였다. 이러한 상호 유인 구조 속에서 데이터 품질에 대한 엄격한 검증이 우선순위에서 밀렸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국회와 감사 기구가 이번 문제를 지적한 배경에는, 9년이라는 시간 동안 축적된 예산 규모와 그에 상응하는 성과 간의 간극이 있다. 규제나 지침이 사업 초기부터 명확히 설계되지 않은 채 확장된 정책 영역에서는, 사업이 누적될수록 문제의 규모도 함께 커지는 경향이 있다. 공공 AI 데이터 정책이 앞으로 어떤 조정 체계를 마련할지는, 이번 지적이 단순한 사업 평가를 넘어 정책 설계 방식 자체를 되짚는 계기가 될지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