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의 샌프란시스코 방문은 구글·엔비디아 등 빅테크와의 접촉을 통해 '공급망 핵심국가' 포지셔닝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대만·일본의 기존 AI 외교 전략과 비교선상에 놓인다. 관건은 발언의 수사가 아니라 실제 CAPEX 유치나 공급 계약으로 이어지는 구조적 연결고리다.
이번 순방에서 나온 핵심 발언은 '다음 세대 삼성·SK를 함께 만들어야 한다'(MBC, 한국일보)는 문구다. 이는 기존 반도체 제조 역량을 AI 밸류체인의 상류(설계·소프트웨어)로 확장하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그러나 비교 대상인 대만의 접근과는 결이 다르다. 대만은 TSMC라는 단일 파운드리 축을 중심으로 엔비디아·애플의 선단 공정 수요를 흡수하는 '수직 결합형' 전략을 취해왔다. 반면 한국은 삼성전자 파운드리와 SK하이닉스의 HBM(고대역폭메모리) 두 축이 분리되어 있어, 정상급 협력 발언이 어느 축의 CAPEX 확대로 연결될지가 불분명하다.
조선일보가 지적한 '실리콘밸리 리더들의 불편한 관계'라는 보도는 이번 방문의 실질적 성과를 가늠하는 데 중요한 변수다. 엔비디아·구글·마이크로소프트 등은 서로 경쟁 관계에 있는 만큼, 다자간 회동에서 나온 협력 언급이 개별 기업 단위의 구체적 투자 약정으로 이어질지는 별개 사안이다. 과거 사례를 참고하면, 정상 순방 직후 발표된 '협력 강화' 문구가 실제 반도체 장비 발주나 파운드리 수주 공시로 확인되기까지는 통상 1~2개 분기의 시차가 있었다. 이번 방문 역시 후속 공시나 CAPEX 가이던스 조정 여부를 분기 실적 발표에서 교차 확인해야 신뢰도를 판단할 수 있다.
남미 순방 일정(SBS, 아르헨티나 밀레이 대통령 면담)과 병행된 점도 비교 기준으로 볼 만하다. 핵심 광물·제조업 협력이 동시에 언급된 것은, AI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인 원자재(희토류, 리튬 등) 공급망을 안정화하려는 다중 트랙 전략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이는 일본이 최근 취해온 '자원-기술 병행 외교'와 유사한 구조이나, 일본은 이미 라피더스를 통한 2나노 공정 국책 투자라는 구체적 실행체가 존재하는 반면 한국은 이번 순방에서 유사한 단일 프로젝트가 명시되지 않았다는 차이가 있다.
투자 판단 관점에서 정리하면, 이번 순방은 방향성 확인 이상의 밸류에이션 근거는 아직 부족하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주가에 반영할 만한 정보는 실제 수주 계약, 합작법인 설립, 또는 정부의 세제·보조금 발표 등 후속 조치다. 순방 자체를 모멘텀으로 소비하기보다, 향후 발표될 반도체 특별법 개정안이나 미국 내 생산시설 투자 발표와 연계해 판단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대만·일본과 비교했을 때 한국의 강점은 메모리(HBM) 부문의 기술 우위이며, 약점은 파운드리 경쟁력 격차와 정책 실행 속도다. 이번 방문이 이 격차를 좁히는 구체적 트리거가 되는지는 다음 분기 CAPEX 가이던스에서 확인할 사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