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당사자 논의’ 발언의 배경 — 정전협정 70년, 왜 아직 '당사자'가 쟁점인가
이재명 대통령이 “오래된 전쟁을 끝낼 남북 당사자 논의를 시작하자”고 밝히면서, 통일부는 ‘주적’ 표현 대체 등 관련 공론화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 발언이 새삼 주목받는 이유를 이해하려면, ‘당사자’라는 단어 하나에 얽힌 70년 넘은 절차적 공백을 먼저 짚어야 한다.
1953년 정전협정은 유엔군사령관(사실상 미국),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중국인민지원군 사령관 3자가 서명했다. 당시 이승만 정부는 휴전에 반대하며 서명을 거부했고, 이는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구조적 문제의 출발점이 됐다. 법적으로 정전체제의 '당사자'는 남북한이 아니라 유엔군(미국)과 북한·중국이었던 셈이다. 한국 정부가 정전협정 당사자가 아니라는 사실은 이후 남북 관계를 논의할 때마다 반복적으로 소환되는 절차적 제약이었다.
이 공백을 메우려는 시도는 여러 차례 있었다.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은 남북 당사자 간 최초의 공식 합의였고,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는 상호 체제 인정과 불가침을 명문화했다. 2000년 6·15 공동선언과 2007년 10·4 정상선언은 정전체제의 평화체제 전환을 의제로 올렸지만, 구체적 이행 절차—누가 어떤 자격으로 서명하고 국제사회의 승인을 어떻게 받을 것인가—는 매번 다음 정부의 과제로 넘겨졌다. 2018년 판문점선언에서도 “종전선언과 정전협정의 평화협정 전환”이 명시됐으나 이후 실질적 진전은 없었다.
이런 역사를 보면 이번 발언에서 핵심은 '평화체제로의 전환'이라는 목표 자체보다, '남북이 당사자로서 먼저 논의를 시작한다'는 순서에 있다. 그동안 한반도 문제는 미국과 중국이 개입하는 다자 틀(6자회담 등)과 남북 당사자 중심 접근이 번갈아 강조돼 왔고, 두 방식 사이의 우선순위 조정은 정부가 바뀔 때마다 다시 설정돼야 했던 문제다. 이번 발언이 남북 당사자 논의를 먼저 앞세운 것은, 절차적으로 보면 국제적 승인 절차보다 남북 간 실무적 대화 채널 복원을 우선하겠다는 신호로 읽힐 수 있다. 다만 이것이 실제 채널 개설이나 회담 일정으로 이어질지는 확인된 바 없다.
통일부가 함께 언급한 '주적' 표현 대체 논의도 새로운 것은 아니다. 국방백서의 '주적' 표기는 노무현 정부 시기 삭제됐다가 정부에 따라 재도입과 완화가 반복돼 온 사안이다. 표현 하나의 변경이 곧바로 정책 전환을 의미하지는 않지만, 이런 용어 조정이 통상 대화 재개를 위한 분위기 조성 단계에서 먼저 검토돼 온 전례가 있다는 점은 참고할 만하다.
결국 이번 발언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것은 선언의 수사가 아니라, 정전체제 전환에 실제로 필요한 절차—남북 당사자 간 합의, 관련국의 승인, 국내 입법·비준 절차—가 지금 어느 단계에 있고 무엇이 아직 확인되지 않았는지를 구분하는 일이다. 현재로서는 '논의를 시작하자'는 제안 단계이며, 구체적 의제나 일정, 상대측 호응 여부는 아직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