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희 북한 외무상의 이번 러시아 방문은 단발성 이벤트가 아니라, 2019년 이후 이어져 온 북러 접근의 연장선에서 읽어야 한다. 국제 제재 체제의 촘촘함과 북러 양국의 외교적 대응 속도 사이에 벌어진 간극이 이번 방문의 배경을 이해하는 열쇠다.
북한과 러시아의 관계는 냉전기 동맹에서 탈냉전 이후 소원, 그리고 최근 수년간의 재접근이라는 세 국면을 거쳐왔다. 1961년 조소우호협력상호원조조약이 사실상 소멸한 이후 양국 관계는 장기간 소강 상태에 머물렀으나, 2019년 블라디보스토크 정상회담을 계기로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후 2023년 보스토치니 정상회담에서 군사·경제 협력 의지가 재확인됐고, 2024년에는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협정이 체결되며 관계의 제도적 틀이 마련됐다.
이번 최선희 외무상의 방러는 9개월 만의 재방문이라는 점에서 특히 주목된다. 동아일보 등 국내 언론은 이를 김정은 위원장의 방러 사전 조율 가능성과 연결지어 보도했으나, 이는 현재까지 정황적 해석의 영역에 머물러 있으며 양국 정부의 공식 확인은 없는 상태다. 다만 외무상급 인사가 단기간에 반복적으로 러시아를 찾는다는 사실 자체는, 실무 협의가 정상 차원의 논의를 예비하는 단계로 이행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절차적 신호로 읽을 수 있다.
이 흐름의 배경에는 국제 제재 체제와 양국 대응 속도 사이의 간극이 자리한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는 2017년 이후 강화된 형태로 유지되어 왔으나, 2024년 대북제재위원회 산하 전문가패널이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로 활동이 종료되면서 제재 이행을 점검하는 국제적 감시 기제 자체가 약화됐다. 규범의 강도는 문서상 그대로이지만, 이를 확인하고 집행하는 절차적 역량은 오히려 후퇴한 셈이다. 이런 공백은 북러 양국이 군사·경제 협력을 확대할 유인을 제공하는 구조적 조건으로 작용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동시에 한러 관계는 냉각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한겨레가 지적한 대로, 최선희의 방러는 한러 간 대화 채널이 위축된 시점과 맞물려 있어 대비 효과를 낳는다. 이는 단순한 우연이라기보다, 러시아가 한반도 정책에서 남북을 대하는 비대칭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관측에 힘을 싣는다.
결국 이번 방문을 평가하려면 개별 일정보다 제도적 축적 과정을 봐야 한다. 정상 간 합의, 실무급 후속 협의, 국제 감시 체제의 이완이라는 세 요소가 겹치면서 북러 관계는 이전과 다른 지속성을 갖게 됐다. 향후 김정은 위원장의 방러 여부나 구체적 군사협력의 실체는 추가 확인이 필요한 사안이며, 현 단계에서는 외교 절차의 흐름을 정확히 추적하는 것이 성급한 결론보다 유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