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12월 7일, 빌리 브란트는 바르샤바 게토 봉기 희생자 위령탑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그 사진 한 장이 독일의 전후 외교를 다시 썼다는 사실은 지금도 과거사 논쟁이 벌어질 때마다 소환된다. 중앙일보 중앙시평에 실린 '지나가지 않은 과거, 함께 감당할 역사'라는 칼럼은, 이 오래된 물음을 2020년대 한국의 언어로 다시 던진다.
독일은 뉘른베르크 재판 이후에도 1958년 루트비히스부르크 나치범죄수사센터를 세워 반세기 넘게 전범 색출을 이어갔고, 일본은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으로 전후 처리를 사실상 종결지었다. 이 갈림길이 훗날 두 나라의 국제적 신뢰도 격차를 만들었다는 지적은 국제정치학계에서 오래 반복돼 왔다.
한국의 경우는 더 복잡하다. 2005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2020년 2기 진화위까지 세 차례에 걸친 과거사 정리 기구가 정권 교체마다 존폐를 오갔다는 사실 자체가, 한국 사회가 아직 '어디까지를 과거로 볼 것인가'에 대한 합의에 이르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적극적 청산론
과거사는 법적·제도적으로 명확히 규명하고 책임 소재를 매듭지어야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
근거 — 규명되지 않은 과거는 반복적으로 정치적 갈등의 연료로 소환된다는 것이 진화위 반복 설치의 경험적 교훈이다.
미래지향 신중론
과거사를 계속 소환하는 방식은 외교·안보 실익을 저해하고 세대 간 피로를 누적시킬 뿐이다.
근거 — 한일 양국 모두 안보·경제 협력의 실질적 필요가 커진 지금, 과거 프레임에 갇히면 협력의 기회비용이 커진다는 판단 때문이다.
더 넓게 볼지, 더 깊게 볼지 골라보세요
한국은 독일식 반복 규명과 일본식 조기 종결 사이에서 어떤 제3의 모델을 만들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