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천 전 감독 별세, '4할 타자' 기록이 43년째 깨지지 않는 이유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 타율 4할4리를 기록한 백인천 전 감독이 광복절 아침 별세했다. 그의 기록과 경력을 되짚어보면 한국 프로야구가 출범 당시 어떤 조건 위에 세워졌는지가 함께 드러난다.
1982년 한국 프로야구가 출범할 때, 리그는 6개 구단 80경기 체제로 시작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짧은 시즌이었고, 선수 풀도 좁았다. 백인천 감독 겸 선수는 이 첫 시즌에 MBC 청룡 소속으로 타율 4할4리를 기록했다. 이후 지금까지 어떤 타자도 정규시즌 4할 타율에 다시 도달하지 못했다. 시즌 길이와 투수력의 변화, 통계적 표본의 문제 등을 고려해도 이 기록이 갖는 상징성은 리그 역사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해왔다.
백인천의 경력에서 짚어야 할 또 다른 축은 일본 프로야구 활동이다. 그는 한국 선수로는 이른 시기에 일본 무대에 진출해 활동했고, 이 과정에서 이른바 '요시 그란도 시즌'으로 불리는 특정 시기의 활동 내역을 둘러싸고 기록과 증언이 엇갈리는 부분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다만 이 부분은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정리된 결론이 없는 사안으로, 이번 부고를 계기로 다시 조명되더라도 확정된 사실로 단정하기는 이르다. 한 인물의 경력 전체를 평가할 때, 밝혀진 기록과 아직 불확실한 부분을 구분해서 보는 것이 온당하다.
감독으로서의 이력도 별도로 짚을 필요가 있다. 백인천은 선수 생활을 마친 뒤 여러 구단에서 감독을 지내며 선수 육성에 관여했다. 이승엽 선수가 별세 소식에 '저를 있게 해주신 분'이라는 표현으로 추모의 뜻을 밝힌 것은, 특정 개인의 회고를 넘어 한 세대의 선수들이 초창기 프로야구 지도자들로부터 어떤 방식으로 훈련받고 성장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볼 수 있다. 프로 스포츠 초기 단계에서는 제도화된 육성 시스템보다 개별 지도자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컸다는 점도 함께 고려할 부분이다.
한국 프로야구가 출범 40여 년을 넘기면서, 원년 세대의 인물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나는 시점에 이르렀다. 이런 시점에서 개별 인물의 기록과 경력을 정리하는 작업은 단순한 추모를 넘어, 리그가 어떤 조건에서 출발했고 그 조건이 이후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확인하는 절차이기도 하다. 4할 타율이라는 기록 하나를 두고도, 그것이 나온 시대의 리그 규모와 경기 수, 상대 전력 수준을 함께 살피지 않으면 정확한 평가가 어렵다는 점은 앞으로도 이 기록을 언급할 때 함께 짚어야 할 대목이다.